한 줄 요약
‣ 어린이가 성고정관념을 가졌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확인해 보세요.
“울음이 많은 남자아이”, “무엇 하나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남자아이”, “기분이 나빠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는 남자아이”
이런 어린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세대별로 답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이런 어린이를 ‘소극적인 아이’, 혹은 ‘소심한 아이’라고 칭하며 걱정하 는 부모들이 참 많지요. 어느 순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참 적극적이네요.” 혹은 “아이가 참 대범하네요.”라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 들이는데, “아이가 참 소극적이네요.” 혹은 “아이가 참 소심하네요.”라는 말은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들리는 걸까요?
가부장제가 요구한 '남자다움'
‘가부장제’가 한 층 더 뿌리 깊었던 시대에는, ‘남자’에게 요구되는 ‘남자다움’이 참 많았습니다. 한 집안을 책임져야 할 남자가 울거나 겁이 많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지요. 남자는 태어나 세 번만 울어야 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하며, 겁내지 않고 언제나 용감해야 했습니다. 이런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어린이가 정말 답답해 보였을 거예요. 그래서 어린이에게 “너는 사내자식이 뭘 이런 일로 울고 그래!”, “너는 남자가 그거 하나 결정 못해?”, “너는 남자애가 왜 그런 걸로 삐지고 그래?”와 같은 말을 쏟아내지요.
자기 스스로 자책
"너는 남자가!"이런 말을 들은 어린이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왜 나는 사소한 것에 도 속상하고 슬플까?’, ‘왜 별것 아닌 일에도 남자답지 못하게 울음이 나올까?’, ‘왜 나는 내 의견 한 마디를 말하는 것도 힘든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자기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
성별 고정관념 때 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다른 친구에게 말을 못 하는 어린이도 많습니다. “쟤는 뭐 여자애 도 아니고, 맨날 삐쳐서 무슨 말을 못 하겠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에요. 이런 어린이 중 심한 경우는 말수가 적어지거나, 자존감이 낮아지고, 상대와 눈을 잘 못 마주치며, 자기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남아'는 정말 문제가 있는 걸까요?
1. '남아'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 성격은 성별에 따라 구분 지어지거나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남자다움’에 대한 바람은 어른의 바람일 뿐이지요. 여자아이라고 얌전하거나 세심할 필요는 없고, 남자아이도 대담하고 적극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이의 성격이 성별 고정 관념에 맞추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면, 오히려 어린이가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해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이가 성별을 뛰어넘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어린이가 가진 고유한 성격을 지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성격’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아요! : ‘소심함’ 또는 ‘대범함’은 잠재력을 가진 여러 가지 성격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적극적이거나 대담한 아이'는 대체로 환영받지만 경우에 따라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지요. 그리고 때때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아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온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고, 사람들을 잘 사로잡지요. 반대로,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아이’는 돌다리를 너무 두들기느라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써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들은 세심하고 조심스러워서 정말 중요한 기회를 잘 선별해냅니다. 또,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하는 화법을 가진 경우가 많지요.
3. 소심한 성격도 장점이 있어요! :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장점은 풍부한 감정과 생각이에요. 배우들 사이에서 소심하기로 유명한 영화배우 ‘엄태구’는 평소의 모습과 달리 스크린 속 에서는 거친 액션 연기와 다양하면서도 밀도 있는 감정 연기를 하는 프로의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한 배우에 따르면 그와 같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배우들이 누구보다도 밀도 있는 감정 연기를 잘 해낸다고 해요. 마음 속에 많은 감정과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단면만 보고 고쳐야 할 부정적인 성격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가 가진 성격을 성급하게 재단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로 취급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려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라고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린이가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주세요. 부모로서 어린이가 바람직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 어린이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두 어린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어린이는 “네가 소심하고 소극적이라 걱정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고, 다른 어린이는 “너는 세심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살펴 주는 따뜻한 아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면 어떻게 될까요? 둘 중 누가 스스로를 긍정하며 자신감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될지는 너무나도 명확하지요. 어린이가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응원하는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 더욱 많아지길 바라 봅니다.
- 허인선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소속 초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