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해요.
- 아이가 브레인트롯 훔치기를 하면서 다른 아이와 갈등이 생겨,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
- 로블록스 게임을 하는 아이와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궁금한 분
놀이와 사기의 경계
2025년 상반기 내내 알 수 없는 주술 같은 말(‘트랄랄레로 트랄랄라,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 등)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교실에 새로운 이슈가 찾아왔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현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게임인 ‘브레인로트 훔치기 게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 얘가 제 브레인롯 훔쳐 갔어요.”
“뭔 소리? 선생님, 훔쳐가는 게임에서 훔쳐 간 게 잘못이에요?”
인터넷 밈에서 비롯된 AI 캐릭터 ‘이탈리안 브레인롯’을 훔치는 것이 룰인 이 게임은 단순한 장난 이상의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아이템을 훔치는 행위 자체가 게임의 핵심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열려 있는 다른 사람 창고에 들어가서 브레인롯을 빨리 훔쳐 가지고 나오면 돼요.”
“저랑 친구가 전략 짜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훔쳐요.”
“아이템 빌려달라고 해놓고 안 돌려주는 사람도 있어요. 사기 치는 거예요.”
“아는 형이 그래서 계속 달라고 했는데, 자기가 사기를 쳐서라도 어쨌든 훔친 건데 그걸 왜 달라고 하냐고 해서 말 못 했어요.”
‘훔치기’가 규칙인 게임 안에서 ‘사기’가 정당화되는 어린이들의 논리는 교사로서 잠시 말을 잃게 만듭니다. 한쪽은 “룰 안에서 전략을 쓴 것”이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사기 피해를 당했다”라고 호소합니다. 유행하는 게임이라는 이유로 우르르 몰려 <브레인롯 훔치기>에 접속한 어린이들은 갑작스레 당한 사기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교사와 보호자도 도대체 ‘훔치기’ 게임 안에서 일어난 일을 어떤 기준으로 해결해야 할지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제는 아이템을 훔치거나 빼앗긴 일이 단순한 가상 아이템의 손실이 아니라 ‘경제적 피해’로 인식되며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어린이에게 브레인롯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새벽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린 이벤트를 통해 획득했거나, 실제 돈(로벅스)을 주고 구매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보통의 게임과 달리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느낍니다. “재밌을 줄 알고 접속했는데 누군가 내 것을 훔쳐 가서 슬펐어요, 화났어요.”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브레인롯 아이템은 유명한 중고 거래 사이트나 디스코드(음성 채팅 앱)를 통해 되팔리고 있습니다. 실물 경제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싸게 팔리는 브레인롯은 10만 원 이상에도 거래된다고 합니다.
경제적 피해까지 얽히고설키다 보니 실제로 많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온라인 다툼이 오프라인 싸움으로 번지고, 보호자 갈등이나 학교폭력 사안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학교는 가정 내 자유로운 취미를 금지할 수도, 이런 사안을 없는 일처럼 무시할 수도 없으니 “특정 게임 자제 권유” 정도의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이 현실적 한계입니다.
아이와 함께 게임 규칙 울타리 세우기
그렇다면 가정에서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금지’한다고 금지되지 않을뿐더러, 금지는 대화의 문을 닫을 뿐이죠. 양육자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음지로 어린이를 더욱 내모는 ‘통제’는 역시나 지혜로운 대응이 아닙니다.
친구 간의 갈등이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놀이터에 어린이를 내보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린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돕는 방법은 늘 단순합니다. 통제자나 감시자가 아니라, 미디어 자립을 지원하는 조력자로 어린이 곁에 서는 것입니다.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박유신 외, 2025)에서도 강조하듯, 어린이의 게임 생활을 관리한다는 것은 시간을 제한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함께 성찰하는 일입니다. 어린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듣고, 그 경험이 어떤 감정을 남겼는지를 함께 청취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미디어 교육이 절실합니다. 매번 조력하리라 다짐하지만 곧 ‘훈계’로 끝나는 양육자들을 위해 ‘로블록스 가정 대화 주사위’ 활동을 제안합니다.
주사위의 여섯 면에는 다음 내용을 붙입니다.
(1) 내가 자주 하는 맵의 특징과 규칙 소개하기
(2)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맵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
(3) 나와 친구들이 게임 맵에서 겪은 문제 상황
(4) 로벅스가 생기면 가장 하고 싶은 일
(5)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 유튜버 소개하기
(6) 행복한 우리 가족을 위한 게임 약속 이야기하기
주사위를 굴려 나온 주제에 대해 양육자와 어린이가 차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를 들어, (1)번이 나왔을 경우입니다.
🧑 “요즘 브레인롯 훔치기 한다고 했지? 그 게임은 어떤 규칙이야?”
👧 “다른 사람 창고 들어가서 훔치면 이기는 거예요.”
🧑 “특별히 그 게임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 “친구랑 호흡을 잘 맞춰야 해요. 그래서 그때 통화하면서 하거든요? 지름길이랑 점프 코스도 미리 연습해요.”
🧑 “오, 전략 연습도 하는구나. 멋지다. 그런데 만약 현실에서 아이템을 훔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떨 것 같아?”
👧 “그건 나쁘죠. 이건 게임이니까 괜찮은 거죠.”
🧑 “그렇구나. 그럼 교실에서 실제 스마트폰 훔치기 게임 같은 게 생기는 건 어떻게 생각해?”
👧 “그건 실제니까 나쁘죠.”
🧑 부모: “오 그래? 다른 판단을 내렸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진짜 궁금한데?”
👧 “그건 실제로 비싼 물건이니까요.”
🧑 “실제로 쓰는 비싼 물건을 훔쳐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로블록스 아이템은 가상 아이템이라 문제 될 게 없을까?”
👧 “그것도 돈 주고 사기도 하기는 하는데…”
🧑 “맞아. 너도 저번에 로벅스 주고 샀잖아. 만약에 같이 훔치고 놀던 친구가 내 돈을 손해 본 상황이라면서 ‘절도’라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야?”
👧 “그러면 그때는 돌려줄래요.”
🧑 “그렇구나. 그땐 돌려줄 생각이구나. 그런데 돌려줬는지 안 줬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던데?”
👧 “돌려주고 받았다는 대화 캡처 같은 거 해 두면 안심되긴 하겠네요.”
🧑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엄마가 느끼기에는 상황마다 어쩔 땐 돌려주고 어쩔 땐 안 돌려주고 일관성 없이 대응해야 하는 게 위험하게 느껴져. 네가 학교폭력에 연루될까 봐 걱정도 드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감정의 맥락을 따라가며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느낌을 공감’하는 대화가 핵심입니다. 충분한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느낄 때 한 칸 전진합니다. 핵심은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게임 생활을 돌아보고 더 나은 선택을 경험해 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 대화의 목적은 어린이의 게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경험을 성찰의 언어로 바꾸는 것입니다.
마지막 칸에 도달하면 약속한 보상(자유 게임 30분, 소정의 로벅스 지급 등 어린이가 원하는 것 중심)을 이행합니다. 이 활동에서 양육자는 ‘말하기’보다 ‘듣기’, ‘판단’보다 ‘공감’에 집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긍정적인 대화 경험은 다음 대화의 발판이 되며, 대화가 훈계로 끝나지 않을 때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는 놀이로서의 대화가 완성됩니다.
오늘 우리 집 어린이의 선택이 다소 아쉽더라도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른의 조급증을 이겨내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고, 다음 대화에 마음을 열어 주는 것은 어린이의 일이겠지요.

게임 밖의 세상으로 이어지는 울타리
이 모든 대화의 목적은 ‘게임을 더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 안에서의 경험을 삶의 배움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겪은 실패, 사기, 협동, 용서, 그리고 더 나은 선택의 경험이 게임 속에만 머물면 의미가 없습니다.
학교의 협력 활동, 지역 사회의 놀이 모임, 또래와의 실제 만남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어린이의 세계는 균형을 찾습니다. 게임은 어린이들의 새로운 놀이터지만, 세상을 배우는 유일한 교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 공간의 규칙을 배우는 동시에 사람과 직접 부딪히며 관계를 배우는 기회를 세심히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또 다른 울타리 세우기입니다.
어린이의 미디어 생활은 결국 어른의 관심으로 완성됩니다. 통제보다 신뢰, 금지보다 대화, 방임보다 동행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어린이 곁에서 함께 듣고, 함께 약속하고, 함께 뛰어놀 때 어린이들은 스스로 더 나은 문화를 선택하고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로블록스 안에서 시작되어 현실로 이어지는 진짜 디지털 시민성의 울타리입니다.
(글 김수미)













